문 여는 순간 '혈압 스파이크?'… 겨울철, 돌연사 위험 낮추려면
최근 영하권 추위가 이어지면서 아침 출근길이나 가벼운 외출 시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현상을 겪곤 한다. 이는 단순한 한기를 느끼는 차원을 넘어, 급격한 기온 변화에 대응해 체온을 유지하고자 혈관이 수축하고 교감신경이 항진되는 신체의 생리적 방어 기전이 작동한 결과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고혈압 환자나 고령층에게는 치명적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기온이 1도 낮아질 때마다 수축기 혈압은 약 1.3mmHg씩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혈압 관리가 양호했던 사람이라도 겨울철에는 수치가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이는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 중증 심뇌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가정의학과 김효은 교수(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와 함께 겨울철 혈압 급상승의 기전과 올바른 관리 수칙을 상세히 짚어본다.
급격한 온도 차가 만드는 '혈압 스파이크', 혈관벽 미세 상처 유발
실내외 온도 차가 극심한 겨울철에는 문을 열고 나가는 찰나의 순간조차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뜻한 실내에 머물다 차가운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즉시, 우리 몸은 체온 유지를 위해 말초 혈관을 급격히 수축시키고 심박수를 증가시키는 생리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좁아진 혈관을 혈액이 통과하며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혈압 스파이크(Blood Pressure Spike)'라 칭한다. 이는 마치 정원 호스의 끝을 손가락으로 막았을 때 물줄기가 세지는 원리와 유사하다. 혈관이 수축하여 통로가 좁아지면 혈류 저항이 커지고, 이를 극복하여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기 위해 심장이 더 강하게 수축하면서 혈관벽에 가해지는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김효은 교수는 "짧은 순간이라도 급격한 온도 변화는 혈관과 심장에 상당한 자극이 된다"며 "혈관벽에 가해지는 높은 압력은 이미 노폐물이 쌓여 약해진 혈관 내피세포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상처를 유발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 경우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중증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평균 혈압보다 무서운 '혈압 변동성', 겨울철 심뇌혈관질환 위험 2~3배↑
혈압 관리에서 단순히 수치가 높은 것보다 더욱 위험한 요인은 혈압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혈압 변동성(Blood Pressure Variability)'이다. 혈압은 자세, 활동, 감정, 식사, 기온 등 다양한 환경 요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동하지만, 그 폭이 지나치게 클 경우 혈관 건강에 위협이 된다.
이상적인 혈압 변동이 잔잔한 호수라면, 변동성이 큰 상태는 폭풍우가 치는 바다에 비유할 수 있다. 거센 파도가 지속적으로 바위를 때려 균열을 일으키듯, 혈압이 크게 출렁일수록 혈관벽에 가해지는 물리적 스트레스(Shear Stress)가 가중되어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평균 혈압이 유사하더라도 변동성이 큰 군(群)에서 뇌졸중 및 심혈관질환 위험이 20~3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특히 겨울철은 일 년 중 혈압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시기다. 일본에서 시행된 대규모 가정혈압 연구 결과, 매일 측정한 혈압의 변동성이 겨울철에 가장 컸으며, 변동성이 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3배 높게 나타났다.
김효은 교수는 "겨울철에는 기상 직후 혈압이 가장 높은 아침 시간대에 낮은 기온에 의한 추위 자극이 더해지고, 실내외를 오갈 때마다 혈관의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변동폭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또한 "여기에 일조량 감소로 인한 활동량 저하, 연말 모임에 따른 음주 및 식습관 변화 등이 겹치면서 겨울은 혈관이 가장 혹사당하기 쉬운 계절"이라고 지적했다.
'가면 고혈압' 위험 높은 겨울철, 진료실 밖 측정 중요
이처럼 겨울철에는 외부 기온과 환경 요인에 따라 혈압이 급격히 널뛰기 때문에, 안정된 상태에서 측정하는 진료실 혈압만으로는 환자의 실제 위험도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가면 고혈압(Masked Hypertension)'이다. 이는 병원 진료실에서 측정할 때는 정상 수치를 보이지만, 가정이나 직장 등 일상생활 중 혈압이 높게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가면 고혈압은 겉보기에 정상 혈압으로 오인되기 쉬워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의학계 보고에 따르면 가면 고혈압 환자의 뇌졸중 및 심근경색 발병 위험은 일반적인 고혈압 환자와 유사한 수준으로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혈압 변동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병원 수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김효은 교수는 "고혈압 가족력이나 비만,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의 위험 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병원에서 측정한 수치에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기온 변화가 심한 겨울철에는 가정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혈압을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가정혈압 측정 외에도 '24시간 활동혈압(ABPM)'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루 동안의 혈압 패턴을 확인하고, 특히 겨울철 아침 시간대나 추위 노출 시 혈압이 얼마나 급격히 상승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압 스파이크 막는 생활 수칙 5가지
겨울철 혈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 작은 습관들을 교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효은 교수가 제안하는 주요 관리 수칙은 다음과 같다.
1. 목욕 시 '히트 쇼크' 주의: 뜨거운 물에 전신을 오래 담그거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행위는 혈압 스파이크를 유발할 수 있다. 안전한 목욕을 위해 욕조 물 온도는 41℃ 이하로 설정하고, 입욕 시간은 10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권장된다.
2. 운동 시간대 조절: 겨울철 새벽은 혈압이 생리적으로 가장 높고 기온이 낮아 위험하다. 영하의 새벽 야외 운동은 피하고, 해가 뜬 후 기온이 오른 늦은 오전이나 낮 시간대에 실내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가피하게 새벽 운동을 할 경우 실내에서 충분한 준비 운동으로 체온을 높인 후 보온에 유의해야 한다.
3. 체온 유지를 위한 복장 착용: 머리와 목, 손발은 체열 손실이 많은 부위다. 외출 시 모자, 목도리, 장갑 등을 착용하여 일명 '혈관의 외투'를 챙기면 말초혈관 수축을 완화해 혈압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4. 철저한 음주 및 식습관 관리: 술은 마시는 순간보다 다음 날 아침 혈압을 상승시키는 영향이 더 크다. 추위를 핑계로 음주량이나 국물 섭취를 늘리기보다, '한 잔 덜 마시고 국물은 남기기'를 목표로 삼는 것이 혈관 건강에 이롭다.
5. 가정혈압 측정의 생활화: 김 교수는 "가정혈압은 내 몸의 상태를 보여주는 계기판과 같다"고 강조했다. 아침 기상 후 소변을 본 뒤 식사 전, 그리고 저녁 취침 전에 등받이 의자에 앉아 편안한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겨울철 심뇌혈관질환 예방의 첫걸음이다.